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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남한 방문도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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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Soyeon Jang

느릿느릿 사소한 통일
1부
언론인의 방북기 제2회

남한 방문도
불편 겪어

1980년대 방북 시의 한국 상황과 경험을 전한다. 오래전 옛일이지만 바로 엊그제같이 기억이 생생하다. 주변에선 과거 내 방북 건을, 외국시민권자(1979년 캐나다 시민권자)이니 북한 땅을 쉽게 오가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 외국시민이라고 방북이 쉽지 않다. 북한방문은 늘 입국사증받기가 힘들고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평양공항 출입국을 통과할 때는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이는 아마 누구라도 마찬가지 심정이리라.

1980~90년대 대한민국 공항 역시 그랬다. 나는 캐나다여권으로 다소 출입국이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방북이력 때문에 김포공항(인천공항 개항은 2001년부터) 입국심사 때는 간단치 않았다. 출입국 심사대 통과 시는 가끔 옆에 세워놓고, 캐나다 여권을 샅샅이 살핀 뒤 보내주곤 했다.

서울 체류기간 중에도 은밀히 내 움직임을 감시당했다. 처음에는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매일 볼일을 보고 지인들과 술도 한잔하고 호텔로 돌아오면 대개 밤 11시가 넘는다. 그때마다 어둠 속에 주차했던 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번쩍대는 것이다. 처음엔 무심히 넘겼다. 사흘째 같은 일이 반복되자 비로소 눈치를 챘다.

‘아, 내가 미행당하고 있구나.’하고. 서울에서 교통사고도 두 번 당했다. 한국방문 직전 누군가 내게 힌트를 준 적이 있다. 한국에 가면 교통사고를 조심하라고. 그것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비이락인가. 그해 삼각지 부근에서, 다음 해는 양화대교 근처에서 차 사고를 당했다. 두 번 다 뒤차가 내가 탄 택시를 들이받은 것이다. 대낮 음주운전이 아니었다.

두 번째 경우는 정말 이상했다. 한번 힘껏 받더니 다시 연거푸 들이받았다. 사고를 일으킨 자는 30대 중반으로 내게 절절매는 시늉을 했다. 택시기사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내 눈치를 봤다. 약속시각이 늦었고 일단 몸이 괜찮으니 택시에서 내려 내 갈 길을 갔다.

그러나 당장은 몰랐으나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한동안 목 때문에 고생했다.

이런 황당한 일을 겪으며 북쪽 행사취재를 위해 남북을 들락거렸다. 당시 강원일보(동부재벌그룹이 인수하기 전)의 고 최종명 전무(편집국장 역임)의 신뢰와, 조선일보에서는 고 염기용부장 등이 따뜻이 격려를 해 줬다.

변함없이 뒤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은 언론인뿐이었다. 강원일보 최 선배(전무)는 1992년 나를 모스크바 초대특파원으로 추천해, 그때 교포기자에서 한국기자로 전환케 된 계기가 만들어졌다.

그즈음 이해를 못 했던 한 가지 건이 있다. 월간조선에서 내 첫 방북기를 도중에 취소시킨 점이다. 그때 내 원고는 ‘평양, 평양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이미 가인쇄됐고, 원고료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당시 유정현 월간조선부장은 상부지시 때문인지 내게 한두 달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도 결국 게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조갑제 기자가 부장 대우였고, 당시 책임자는 고 최청림 출판국장(나중 편집국장 역임)이었다.

나로서는 아까운 방북원고가 석연치 않게 사장(死藏)돼 버렸으니 억울했다. 수년 후 최청림 국장과는 관훈클럽 시상식장에서 조우했다. 그는 ‘노태우 비자금 4천억 원’ 보도로 언론상을 탔고, 모스크바 특파원이던 나는 ‘관동군에 징병된 6,300여명 조선인명단 발굴’ 특종 건으로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던 자리였다. 세상은 의외로 좁았다.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수상 관련 사진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수상 당시
관훈클럽/한국신문상 탈 때 사진: 조순 부총리와 언론사 사장들

평양과 모스크바는 닮은 꼴

예나 지금이나 평양시민들은 전부 아파트 생활을 한다. 모스크바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정권이후 수도 평양은 대폭 현대화로 변모됐지만, 도시는 러시아 모스크바와 거의 닮은꼴이다.

두 도시 모두 땅속 깊숙이 뚫은 지하철 하며, 파리 개선문을 모방해 일찍 개선문을 세운 것도 그렇다. 다른 공통점은 국영서커스(북한 명 교예)기술이 세계적이다. 또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환경에 신경을 썼다. 모스크바 대형 아동백화점, 아동극장, 어린이도서관 등등. 평양 역시 일찍 평양소년궁전 등 각종 어린이시설을 각처에 마련해 놓았다.

평양 도심 전경
평양 도심 전경

한편 당원, 비당원 막론하고 지방 주민가족 중 영재어린이들을 발굴하는 제도다. 선발된 어린이는 부모와 분리해, 어린 나이 때부터 평양으로 데려와 특별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함경도 청진의 한 탈북자는 어릴 때 평양으로 간 외아들을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재미로 세상을 살아왔다고 전했다.

북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당원이든 비당원이든, 이 열 가지 원칙이 평양 생활의 저변을 지배했다

평양하면 평양냉면이 이름나 있다. 예전엔 냉면보다 더 유명한 평양명물이 있었다. 1920년대 평양기생학교이다. 지금은 아예 잊혀 져 흔적도 없지만, 모란봉 부벽루의 평양기생 발자취는 남쪽의 서울 명월관과 함께 옛 자료에 남아있다.

예부터 평양 8경 풍류는 잘 알려져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유명세는 변함이 없다.

평양 8경
을밀상춘모란봉 을밀대에서 바라보는 봄 경치
부벽완월부벽루에서의 달맞이 풍경
영명심승해 질 무렵 영명사에 중들이 찾아드는 모습
연당청우대동문에서 종로로 통하는 길 한복판에 있었던 연못에 비 내리는 소리
보통송객보통강 나루터에서 떠나는 나그네를 전송하는 광경
용산만취용산, 즉 대성산의 소나무가 늦가을에도 푸른 풍경
거문범주수레문, 즉 옛날 평천리 앞을 가로막았던 외곽 성문 유지에서의 뱃놀이
마탄춘창이른 봄 대동강의 여울 마탄의 눈 섞인 물이 소용돌이치는 풍경

또 2007년은 평양에 개신교 최초 장대현교회가 세워진 지 100주년 되는 해(평양 대 부흥)였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부르는 당시의 평양장로교회는 복음의 중심지로서, 만수대 언덕은 현재 김일성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다음 회에 계속
지은이 사진
송광호
서울 사대부고. 서강대/성균관대 졸업
1975
한국전력 근무 중 캐나다 이민
1981
토론토 한국일보에서 언론인 생활 시작(교포일간지 창간요원)
1987
조선일보 토론토지사 발행(겸 편집)인
1992
한국 5개 지방연합신문(강원·광주·대구매일·대전·부산일보) 모스크바 초대·2대 특파원
1999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2월부터)
2020
대한언론인회 국제분과위원회 간사
재외언론인협회 고문,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대표 역임
수상
1994 한국신문상 · 1996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 2004 재외동포기자상 ·
2012 이민기록문학상 대상 · 2013 대한민국 인권상 표창
기타
2014년 강원도 양구 근현대사박물관에 ‘근현대사자료기증 기념비’ 건립
저서
『캐나다 이민 20년 한국인은 뛰고 있다』(조선일보사, 1991)
『나는 이렇게 아메리칸이 되었다』(다움출판사, 2005)

[느릿느릿 사소한 통일] 이 책은 관훈클럽 기금으로 저술출판 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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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사소한 통일 ·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