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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바란다고 오는 것도,바라지 않는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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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워싱턴

통일은 바란다고 오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다

한인나눔운동(KASM) 나승희 대표가 30년째 던지는 질문

나승희 대표
마운트버넌을 찾은 참가자들에게 설명하는 나승희 대표.

거의 30년 가까이 워싱턴에서 북한 문제에 매달려온 사람이 있다. 한인나눔운동(Korean American Sharing Movement, KASM)의 나승희 대표다. 나승희 대표는 세계은행 그룹의 국제금융공사(IFC)에서 23년간 근무한 금융 전문인이자, 미국의 비영리 민간단체인 한인나눔운동(KASM)을 이끌며 통일 시대 리더 양성과 탈북 대학생 교육 지원 활동을 펼치는 인물이다.

1997년 한인나눔운동 창립 당시 자원봉사자로 인연을 맺은 그는 2010년부터 단체를 맡아 탈북 대학생 및 국내 청년들을 미국(워싱턴, 뉴욕 등)으로 초청하여 국제기구 견학 및 리더십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 프로그램으로 워싱턴에 다녀간 청년들은 모두 110여 명이 된다. 워싱턴에서 나승희 대표를 직접 만났다.

폴란드에서 발견한 질문

나 대표가 북한을 처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뜻밖에도 폴란드에서였다. 1991년 가을부터 1994년 봄까지 그는 폴란드 시멘트 공장들을 외국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민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하루아침에 체제가 뒤바뀐 나라의 노동자들은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기는 유럽 한가운데라 아무리 가난해도 (옆에) 프랑스가 어떻게 사는지는 알고 지내왔는데도, 정부가 바뀌니까 사람들이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그러면 북한은 어떻게 될까, 그 생각이 갑자기 확 들었어요.”

그는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나이 60을 기다리지 않고, 50대 중반이면 직장을 그만두고 북한 사람들에게 협상과 준비의 노하우를 전하겠다고. 이후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한 관련 행사를 빠짐없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인나눔운동에서 워싱턴 리더십 프로그램까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소식이 국제사회에 전해지면서 한국과 미국 각지에서 지원 단체들이 생겨났고, 1997년 1월 메릴랜드에서 한인나눔운동이 설립됐다. 나 대표는 창립 총회부터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단체는 2003년 숙명여대의 요청으로 ‘워싱턴 리더십 프로그램’을 시작해 2008년까지 매년 한국 대학생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2010년 프로그램을 이끌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단체 운영이 그에게 넘어왔다. 같은 시기 조기 은퇴한 그는 북한행을 다시 알아봤지만 “한국 사람은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면 목숨을 걸고 한국까지 와서 정착한 탈북 청년들을 데리고 이 프로그램을 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2012년부터 그는 탈북 대학생을 선발해 워싱턴으로 데려오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일회성 프로그램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최소 10년을 목표로 삼았다.

워싱턴 리더십 프로그램 견학
마운트버넌 전시관에서 참가자들에게 설명하는 나승희 대표.

탈북 대학생들과 함께한 10년

프로그램은 2012년 4명으로 시작해 점차 참가 인원을 늘려갔고, 2015년 무렵부터는 탈북 대학생 10명 안팎에 남한 출신 대학생 서너 명을 섞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까지 누적 참가자는 110명, 이 중 약 80명이 탈북 출신이었다. 매년 봄, 가을 동문 모임을 열어 참가자들 간의 관계가 이어지도록 했고, 2017년부터는 겨울방학마다 영어 공부를 위해 그의 집에 다시 머무는 청년들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가시적인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그는 인정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2022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남한 출신 학생은 별다른 포부를 밝힌 적이 없었는데, 이후 국제개발 분야로 방향을 잡아 대학원에 진학했고 올봄에는 워싱턴의 한 국제금융기구에서 인턴십을 시작했다. “2022년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나서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과 국제기구 쪽으로 일하고 싶다는 동기가 생겼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었다.

대학생 프로그램은 탈북 대학생 수 감소로 2022년을 끝으로 중단했고, 2023년부터는 그의 모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형태를 바꿔 이어가고 있다.

2026 워싱턴 리더십 프로그램 수료식
2026 워싱턴 리더십 프로그램 수료식에서 참가자에게 수료증을 전달하는 나승희 대표.

“인권 이야기만으론 부족하다”

나 대표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하나다. 통일을 향한 ‘준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북한 인권 문제가 너무 치중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20만 명 이야기만 가지고 2,500만 명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나머지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해요.”

나 대표가 특히 날을 세우는 대목은 ‘행사만을 위한 행사’다.

“지난 15년 동안 정말 많이 봤어요. 남북한 청년 자전거 타기, 제주도 가서 뭘 하기, 캠프, 힐링, 마라톤… 하루에도 열 가지씩 이런 행사가 열리고 있을 거예요. 다들 통일에 대한 인상이 부정적이거나 아예 무관심하니까, 우선 그 인상을 좋게 만들자,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하는 취지죠. 그런데 문제는, 그 안에서 정말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는 이런 행사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행사 한 번 하고 나면 자기네가 뭔가를 이룬 것처럼 생각해요. 저는 그건 환상이라고 봐요. 돈 낭비, 시간 낭비고,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표면적이고 단순한, 어린아이 같은 사고방식만 심어줘요. ‘우리도 북한 사람들하고 살 수 있어, 친구 될 수 있어’ 하는 느낌만 갖고 돌아오는 거지, 실제로 같이 사업을 해본다든가 함께 일해본다든가 하는 경험은 아니거든요. 정말 어려운 건 그 다음부터인데, 거긴 아무도 안 가요.”

그가 근거로 드는 것은 프로그램을 거쳐 간 탈북 청년들의 현실이다.

“제가 아는 탈북 청년들만 8~90여 명이 지나갔어요. 그것 말고도 거의 매년 30여명씩 인터뷰를 했는데, 그렇게 알게 된 젊은이들 중에 남한 회사에 제대로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이 몇 명 안 돼요. 왜 그런지에 대해 구조적으로 의논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냥 ‘남한 사회가 편견이 심하다’, ‘우리를 깔본다’ 이런 생각만 하지, 정작 북한 사회를 남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명해본 적도, 그렇게 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는 열몇 살에 입국해 한국에서 초중고와 대학, 대학원까지 마친 청년도 자신이 살았던 북한 사회를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봤다고 말했다. “그게 설명이 안 되는데,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닦을 수 있겠나, 그게 제 고민입니다.”

마운트버넌 노예제 역사 설명
흑인 박물관에서 노예제 역사를 참가자들에게 설명하는 나승희 대표. 그는 북한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이만큼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는 미래, 통일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통일이 왜 필요한가. 나 대표는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인구다. “남한 5,200만, 북한 2,600만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에 1억을 못 넘어요. 그런데 하나가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순식간에 1억이 넘습니다. 1억이 넘으면 이 스토리, 이 상황이 많이 달라져요.”

그는 저출산 대책으로 ‘인구 절벽’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통일을 통한 인구 증가 가능성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인구 규모의 변화는 국제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그는 본다.

“지금 중국은 남한이 5천만 명 인구로 세계 경제의 15번째를 차지하며 자기들과 맞장 뜨려 한다며 만만히 보고 억누르려 하는데, 한반도가 통일돼 인구가 1억이 넘으면 상황이 확 달라져요.”

둘째, 이미 증명된 잠재력이다. 그는 한국의 산업화 경험을 근거로 든다.

“한국은 1960년대에서 80년대 후반까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25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그때 인구가 얼마였는지 아세요? 3,500만~3,600만 명밖에 안 됐어요. 일할 수 있는 성인 숫자로 치면 그보다 훨씬 적었죠. 그 숫자를 가지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 기적을 이뤘단 말이에요.”

그는 북한 주민들 역시 같은 민족의 기질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북한 주민들도 지금 그 체제 안에서도 먹고 살 길을 조금만 열어주면 온갖 것을 다 해내잖아요. 그게 우리 한민족의 기질이에요. 이걸 합쳐 놓으면 경제 발전의 잠재력은 엄청나다고 봅니다.”

다만 그는 통일이 ‘원한다고 오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몇몇 사람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이 북한 사람은 가난하고 통일 세금을 왜 내야 하냐며 싫어한다고 해서 통일이 안 오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북한에 어떤 상황이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가기를 오히려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의 연간 소득이 3천 달러 이상이 되어 원하는 집을 짓고,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다음에 딴 생각이 들어요. 정보에 대한, 인터넷에 대한 갈증이 자연스럽게 생길 거라고 봐요.”

동시에 그는 통일이 가져올 갈등의 위험도 경계한다. “남한은 개인주의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회가 됐고, 북한은 그런 개념 자체가 낯선 사회예요. 자존심 강한 두 집단이 만나면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 관련된 우리 한민족, 또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통일 준비를 해야 됩니다. 통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통일이 이루어질 때 혼란과 혼동과 고통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가 되어서 더 큰 규모의 단일 국가를 이루고, 더 큰 성공적인 경제를 이루고, 더 멋진 사회를 이루어서 지금처럼 전 세계에서 모든 나라들이 선호하는 나라가 되겠는가, 그 생각을 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은 언젠가 0.1%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점이에요.”

참가자들과의 세션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세션을 진행하는 나승희 대표.
나승희 · 한인나눔운동(KASM) 대표 장소연 · 워싱턴에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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