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주민들의 월드컵 사랑
장소연의 먼 나라 내 나라
2026년 FIFA 북중미 월드컵이 6월 11일 막을 올렸다. 이번 대회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이 공동 개최하며, 16개 도시에서 경기가 펼쳐진다. 전 세계는 다시 한번 월드컵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열기 속에서, 나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 북한에서 월드컵이 얼마나 뜨겁게 사랑받았는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폐쇄와 월드컵, 너무 어울리지 않지 않는가?
1986년,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밤, 한칸짜리 우리집 토피 주택 방 안에는 조그마한 브라운관 텔레비전 수상기가 있었다. 집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창문을 열어놓은 자그마한 마당에도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은 창문 너머 그 작은 화면을 목이 빠지게 바라보았다. 바로 전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월드컵을 보기 위해서였다. 북한에서는 월드컵을 세계컵이라고 부른다.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세계컵 시즌이 되면, 평양이든 지방 소도시든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끈적한 열기는 가시지 않았고, 모기들은 사정없이 팔뚝을 물어대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공 하나를 두고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해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들에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북한 주민들에게 세계컵은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그 뿌리는 1966년 영국 잉글랜드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월드컵 출전이었던 북한은 당시 2회 우승의 강호 이탈리아를 박두익의 결승골로 1대 0으로 꺾고 아시아 팀 최초로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귀국 후 선수들은 고국 인민들로부터 열렬한 영웅 대접을 받았고, 결승골의 주인공 박두익은 1970년대에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였다. 아주 후에 나는 주변 친구들로 부터 축구 멤버 중 몇병이 정치범 수용소에 갔다는 말을 들었다. 누구는 대지주의 아들인데 신분을 속였다든가, 누구는 재일교포의 편지를 전해준것이 간첩방조가 되었다는 등등 이었다.
북한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당시 김정일 스스로 “체육에서는 축구가 기본”이라고 했을 정도로 축구는 남북한 공히 ‘국기(國技)’의 대접을 받는다. TV채널도 오락거리도 변변치 않던 시절, 세계컵은 그야말로 북한 주민들에게 세상이 통째로 안방으로 들어오는 사건이었다.
그 시절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선수가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1986년 멕시코 세계컵에서 25세의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신의 손’으로 득점한 뒤 이어 ‘세기의 골’까지 터뜨렸고, 대회 5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북한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그 장면들을 목격한 주민들은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키가 165cm밖에 안 되는 마라도나가 큰 덩치의 상대 선수들을 줄줄이 제치고 골을 넣는 모습은 북한 주민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작은 몸으로 세상을 제패하는 그 모습이 어딘가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뒤, 북한 전역에서는 키가 작달막하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들에게 ‘마라도나’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체제 선전과 우상화로 가득 찬 방송 편성 속에서, 축구 중계는 그나마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승부의 세계는 평등했다. 어느 나라 선수든 공을 잘 차면 이기는 것이고, 못 차면 지는 것이었다. 이념도, 선전도, 강요된 박수도 없었다.
“텔레비죤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나팔 방송이라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명한 방송원 리상벽의 축구 해설을 들으면서 농장에서, 공장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 텔레비죤이 생긴 후에 그 열광은 말해서 뭘 하겠는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위원회는 남한 방송위원회에 세계컵 중계를 요청했다. 북한 대표팀이 출전하지도 않는 대회의 경기를, 굳이 남한에 요청해서까지 방영한 것이다. 인민들이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정권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 시대의 세계컵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남한이 월드컵 4강에 오른 2002년 이후 조선중앙TV에서 남한 경기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북한은 남한의 16강전(이탈리아전)을 중계한 데 이어, 제2연평해전으로 남북 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직후인 7월 1일에도 남한의 준결승전과 3·4위전을 녹화 중계했다. 전쟁 일보 직전의 긴장 속에서도, 인민들의 세계컵 사랑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북한 당국이 그 방송을 내보내면서도 개최국이 남한이라는 사실은 끝내 숨겼다는 점이다. 7월 2일에야 라디오 방송 논평을 통해 뒤늦게 공개했다. 경기는 보여주되, 남한의 존재는 지우려 했던 것이다.
남한 경기가 조선중앙TV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뒤의 일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부터 한·미·일 세 나라의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중계되지 않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경기장 광고판에 잡힌 현대자동차 영문 광고는 흐릿하게 처리됐고, 관중석의 태극기도 모자이크로 가려졌다. 축구공은 여전히 굴러가고 있었지만, 화면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10대 시절, 그 여름밤에 런닝구를 입고 마라도나의 모습에 열광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그 열기가 단순한 스포츠 열풍이 아니었음을 지금 되새긴다. 그것은 통제된 일상 속에서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향한 감정과 열정이었다. 공 하나가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터져나온 그 환호와 기쁨만큼은 통제되지 않은, 진짜였다. 어떤 모자이크로도 지울 수 없는….
— 장소연 / Crossing NK 대표